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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7/1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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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재중 군이 한창 드라마를 찍고 있고, 그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한 인터뷰 기사가 홍수를 이루는 가운데, 지난해 이웃님의 요청으로 썼던 <솔직하지 못해서>에서의 연기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재중 군의 생파 책 한 구탱이에 실리는 영광을 안겨준 글인데,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영판 못 썼기도 하고, 현재형으로 읽기에는 맥락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재미있는 것이라면 <솔직하지 못해서>를 보면서 재중 군의 연기가 기대보다 더 좋아서 흥분했던 그때의 내 모습이 보여서 이다.ㅎ 그러면서 또 기대하게 된다. 이번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나는 또 무슨 자랑질을 하고 싶어서 손톱을 갈고 있을까.
영웅재중. 빛나는 재능의 발견
우리 사회가 아이돌에 대해 가진 편견이 있다. 아니, 많다. 그 편견의 벽은 높고 견고해서 많은 재능 있는 아이돌 스타들이 그 앞에서 좌절하고 만다. 동방신기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돌의 표상 같은 그룹이다. ‘동방신기’라는 이름은 고유명사이기도 하지만 ‘특정 연령대에서 독점적이고 비교 불가능한 위치를 점한 젊은 스타’라는 의미의 보통명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영웅재중은 화려한 외모와 독특한 이미지로 수많은 팬들을 매료시켰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기성세대에게는 ‘아이돌의 전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은 노력과 매력, 가창력과 재능의 폄하로 이어졌다.
동방신기, 또는 토호신기가 한국과 일본에서 점유하고 있는 위상이 다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웅재중이 <솔직하지 못해서>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차이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일본과 한국의 차이라든가, 영웅재중이 처한 상황이라든가, <솔직하지 못해서>에 출연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던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웅재중이 과연 연기자로서의 자세와 재능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성 사회가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선을 버리고, 현재 영웅재중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상황과 장벽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한 사람의 재능 있고, 열정 있는 젊은이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솔직하지 못해서>가 시작될 때 우리가 영웅재중에게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2010년 4월. 그 시점에서 영웅재중의 음악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영웅재중의 연기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것이 물음표로 남아있었다. <베케이션>과 <지구에서 연애중>을 통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오래 전의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애초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기획되고 제작된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이 느슨하고 헐거웠다. 그러니 영웅재중의 연기에 대해 우리에게 제시된 단 하나의 실마리는 <천국의 우편배달부>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텔레시네마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제작된 9편의 연작 중 한편인 <천국의 우편배달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유령 비슷한 것’으로 되살아나는 신재준은 ‘판타지로서의 영웅재중’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붙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연기자 영웅재중’을 만났다고 하면, 그건 분명 과장일 것이다. <천국의 우편배달부>의 신재준은 죽음과 맞닿아있는 인물인 만큼 감정의 폭이 크지 않고, 길고 복잡한 대사나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해야하는 장면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본격적인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특이한 작품 형태 또한 본격적인 연기 데뷔라기보다는 영웅재중의 비주얼이 무대가 아닌 스크린에서도 유효한지, 영웅재중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노래와 춤이 아닌 현실의 대화와 동작을 그려낼 수 있는지, 영웅재중이라는 무대 위의 판타지가 현실의 공기와 햇빛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테스트 드라이브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테스트의 결과는 <솔직하지 못해서>의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연기자로서의 영웅재중의 가능성은 일반 대중과 드라마 산업 관계자들의 눈에도 자명했던 것이다.
그리고 2010년 4월 15일 <솔직하지 못해서>가 방영을 시작했다. 영웅재중이 맡은 박성수라는 인물은 조연이지만, 남녀주인공인 나카지(에이타), 하루(우에노 주리)와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극의 주요 갈등 중 하나를 빚어내는 비중 있는 역할이다.
박성수라는 인물은 ‘스토리의 전개’의 측면에서 보면 다분히 전형적이다. 높은 지위를 가졌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남자가 말하지 못할 비밀을 안고 고향을 떠나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밝은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성공을 거두는 것. 다른 점이 있다면 박성수는 새로운 성공을 거두는 대신 과거의 부유함으로 도피해 버렸다. 그리고 어여쁜 공주, 또는 가난하지만 아름답고 성실한 여자와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대신 거절을 당해 버렸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차이는 박성수가 조연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사실상 당연한 귀결이다. 박성수의 퇴장은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을 위해 갈등요인을 제거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박성수는 어두움과 밝음,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공존하는 인물이다. 박성수의 어두움은 이방인이라는 설정만으로도 필연적이다. 게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까지 가지고 있다면 그 어두움의 깊이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솔직하지 못해서>는 이러한 박성수의 어두움을 다소 피상적으로 훑고 지나가버렸다. 거리를 활보하는 수천, 수만의 현대인은 모두 자신의 어두움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 두려움을 이기고 타인에게 손을 뻗고, 타인이 내민 손을 맞잡음으로써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시작한 작품인 만큼 <솔직하지 못해서>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어두움을 짊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어두움이 극의 갈등을 빚어내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박성수의 경우는 ‘차별당하는 외국인’이라는 어쩌면 가장 구조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어두움이 단지 등장인물에 대한 배경정보에 머물고 말았다. 박성수의 과다한 밝음, 부담스러울 정도의 적극성이 이러한 어두움의 반작용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작가가 의도한 것일까 짚어보지만, 극의 등장인물 제시 방식을 보았을 때 이는 아마도 과잉 해석일 것이다. 결국, 다섯 명이나 되는 주요등장인물과 촘촘하고 유기적이지 못한 스토리라인 속에서 박성수의 어두움은 하루를 향한 사랑이라는 밝은 음악 뒤로 깔리는 단조의 반주에 그치고 말았다.
좋은 작품은 작가가 만든 세계에서, 그 세계에 있을 법한 사건을, 그 세계의 룰에 따라 해결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거기서 연기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작가가 쓴 극본의 대사를 외우고, 감독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다일까? 연기자는 그렇게 창조된 세계 속으로 들어가 대본에 쓰인 인물을 그 세계로 소환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웅재중은 연기는 다분히 성공적이다. 영웅재중은 대본 속에 그려진 피상적인 인물에서 밝음과 어두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모두 존재하는, 입체성과 현실성을 갖춘 박성수를 도출해냈다.
무엇보다 영웅재중이 그려낸 박성수의 얼굴에는 그늘이 있다. 미소가 사라질 때 잠깐 드러나는 서늘한 무표정, 돌아서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피로감, 눈 밑으로, 입가로, 손끝으로 지나가는 복잡하고 어두운 감상. 대사나 지문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박성수의 미묘한 어두움을 영웅재중은 자연스럽게 체화해냈다. 그리고 이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저돌적이고, 가끔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밝음 일변도인 박성수에게 이방인으로서의 두려움과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갖춘 사람에게 있을 법한 어두움을 부여했다. 부산스러워 보일 만큼 적극적이고 쾌활한 현대 젊은이의 모습 뒤에 미래와 스스로에 대해 불안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사람처럼 붕 떠있던 캐릭터가 드디어 제 자리에 내려앉은 것이다. 박성수라는 인물이 대본 속 활자가 아닌, 세상에 실재하는 사람으로서 숨쉬고, 이야기하고, 웃고, 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과연 그것이 영웅재중이 의도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영웅재중이 박성수의 캐릭터를 꼼꼼히 분석하고 그 결과에 의거해 그늘과 그림자를 연기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랜 세월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몸 안에 축적된 수많은 감정들, 본능적으로 자신을 감추고, 표정을 위장하는 방법, 성장기에 겪었던 가족과 사회와 경쟁의 기억들. 그런 것들이 영웅재중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고 <솔직하지 못해서>의 박성수에게 그것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재능이라는 사실이다. 재능이란 5살에 교향곡을 작곡하거나 12살에 카네기 홀에 서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체화하여 자신만의 표정과 색깔과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보통 사람을 연기자로 만드는 재능인 것이다.
<솔직하지 못해서>는 6월 24일, 11회로 막을 내렸다.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영웅재중의 연기에만 국한하면 말을 고르거나 에둘러 표현할 필요가 없다. 앞서 제시한 질문들, 영웅재중의 비주얼과 목소리와 동작이 드라마에서도 유효한지, 영웅재중이 현실의 인물을 연기해낼 수 있는지, 다른 배우들과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 영웅재중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솔직하지 못해서>라는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릴지언정 영웅재중의 본격적인 드라마 데뷔가 성공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서 연기자로서의 분명한 재능이 엿보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을 내놓을 여지가 없는 것이다.
2010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3개월 동안, <솔직하지 못해서> 11회의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젊고 빛나는 재능이 발화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제 그의 앞에는 새로운 길이 놓여있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영웅재중이 그 길에 어떤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가 앞으로도 진지한 연기 커리어를 추구할 것인지, 음악에 전념할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도전을 할 것인지, 그저 짐작하고 기대할 뿐이다. 하지만 영웅재중을 그 길로 이끈 것이 재능이라면, 그가 그 길을 오래 걸어가게 하는 것도 바로 그 재능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영웅재중이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최초 목격한 그의 재능이 크고 빛나게 만개해가는 과정들을 그저 숨죽이고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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