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복잡한 인연

<보스를 지켜라>를 보면서, 만약 이 드라마를 통해 그 친구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나는 어마어마한 드라마광이라, 열린음악회 보다 동방신기 영웅재중에게 낚이는 것보다는 
수목드라마 낄낄거리다 김재중에게 낚이는 게 훨씬 가능성 있는 일이다. 

김재중의 팬이 아닌 입장에서<보스>를 보았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바로 김재중, 또는 차무원에게 꽂혔을까?
사실 <보스>는 어디에 꽂힐 만한 드라마는 아니다. 
대본이나 연출, 연기가 제대로 맞물려 들어가면서(물론 이게 엄청 어려운 일이긴 하다) 앙상블을 이루어 
극의 재미가 진행되는 작품이라 
누구 한 사람 또는 어느 한 커플에 낚일 만 하지도 않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차무원을 연기하는 김재중을 보면서 
처음 그에게 흥미를 갖게 됐던 2008년 7월 20일의 열린 음악회 무대를 떠올리곤 한다.
그때 나는 이름도 모르는 스물몇 살짜리 아이돌 스타의 얼굴에 깔린 도저히 독해 불가한 어둠과 슬픔이
연기인가, 진짜의 감정인가, 몰입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노래도 아니고, 얼굴도 아니고, 춤도 아니고, 색기;;;;도 아니고,
정체 모를 감정의 깊이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3년이 지나 2011년 여름에 다시 돌아보니. 김재중에겐 확실히 '그것'이 있다. 
어떤 표정을 지어도, 어떤 노래를 불러도, 어떤 웃음을 웃어도 
그 뒤로 뭔가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언제나 독해 불가한 다른 감정의 깊이가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결국 나를 팬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보스>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재계의 프린스, 하지만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차무원 뒤로 길고 짙게 깔려야 하는 어둠을 
마치 자신의 그림자처럼 자연스럽게 끌고 다니는 김재중이라는 스물일곱살짜리 아이돌 스타.
그가 지금 연기를 하는 것일까. 배역에 저렇게 몰입한 걸까. 
아니면, 그 어둠과 슬픔이 김재중이라는 아이돌 스타 안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 어둠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래서 검색 버튼을 눌렀다가는. 
그만. 
풍덩.




그런데, 왠지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음악과 드라마가 다르고, 영웅재중을 보는 나와 김재중을 보는 나는 분명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심지어는 <보스> 1,2회를 보면서는 김재중이 약간 거슬린다고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 
그건 왕지혜가 처음 나왔을 때 든 느낌과 비슷한 건데,
지성과 최강희가 연예인 포스가 아닌 드라마 주인공 같은 느낌으로 그냥 우리가 사는 공기 속에서 나타난 것 같은 기분이라면
왕지혜는 너무나도 연예인 같은 얼굴로 연예인 같은 대사를 치고 있는데다
눈이 너무 커서 첫 장면 내내 저 언니 눈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했다.
김재중을 보는 '머글인 나' 역시 비슷했을 것 같다. 
최강희와 지성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몹시 비현실적인 비주얼이 툭툭 끼어드는 것을 보며 약간은 눈쌀을 찌푸렸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건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이 친구 애쓰고 있구나.하는 느낌.
물론, 모든 신인 연기자들이 애를 쓴다. 잘 하려고,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그리고 그런 노력은 화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전달된다.
문제는, 애 써서 참 안쓰러울 뿐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애 쓰는 게 점점 발전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분명 수많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선천적인 재능도 있고, 사전 준비의 정도도 있고, 상대 배우와의 케미도 있고, 드라마 스탭의 차이도 있고.   
아니, 이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의 조합이 
한 명의 신인이 배우가 되는지 얼굴과 인지도만 믿고 덤볐던 성급한 연예인으로 남는지의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가 '김재중이 애썼다'고 느끼게 되는 요인은 대단한 사전 준비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시선, 손짓, 대사의 타이밍, 카메라가 자신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 않을 때의 모습까지도 꼼꼼히 설정한 게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문제는, 그것이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준비된 것이라는 게 보이는 점인데, 
이건 신인배우로서의 긴장과 동방신기 시절, SM의 철저한/과다한 교육으로 몸이 굳어있는 탓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보스를 지켜라>를 보는 머글인 나는(물론, 이런 나는 SM의 과다한 딱딱함에 대해서는 몰랐겠지만), 
김재중의 '신인배우'임을 온몸으로 웅변하는 연기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거슬린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면으로는 아주 좋은 의미로 '애를 많이 쓰고 있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3회에 이르러. 참 깜짝 놀란 일이 있었는데, 김재중의 연기가 아니라 '지켜줄게'가 처음 흐르던 장면에서였다.
아마도 최강희와 지성의 씬이었던 것 같은데, 그 장면이 나올 때까지 나는 아마 '지켜줄게'를 수십 번은 들었을 것이다.
(3회는 본방사수를 못 했음. ㅠㅠ)
(노래 자체에 대해서는 좋기도 하고. 뭐. 이러저러한 감상이 있는데. 이 부분은 패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자세히는 들리지 않지만 가사의 발음이 주는 '음악'적인 느낌도 좋고, 잔잔하게 읖조리는 듯한 목소리도 참 좋다.
음원으로 들을 때보다 이렇게 어떤 맥락을 가진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나오니 훨씬 좋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머글이어서 이 노래를 그 장면에서 처음 들었다면,
음악에 대해 약간은 과도하게 집착하는 나의 특성상, 이 노래가 뭔지. 누가 부른 건지를 바로 검색해봤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마 김재중의 노래라는 걸 알고는 조금 놀라서는 
2008년 7월 20일날 그랬던 것처럼 궁금해졌을 것이다.
이 친구가 정말 노래를 잘 하나? 이런 느낌은 드라마 때문인 건가? '이번 한번'에 한정인 건가? 
그리고는 마구 자기 비판을 하고 스스로를 비웃었을 수도 있다.
내가 미쳤구나. 아이돌, 그것도 동방신기 출신 아이돌 노래를 듣고 좋다고 생각하다니.

하지만 궁금증에 저항하지 못하고 동방신기 노래를 찾아듣다가
풍덩.






그런데, 또 그쪽은 아닌 것 같은 것이....
사실, 드라마 3회 보고, 노래 하나 들은 입장에서, 가슴팍 다 드러낸 '주문' 무대를 봤거나
완전 아이돌 돋는 무대들을 봤거나, 특히 김재중의 초울트라 섹시함을 강조한 플짤이나 사진을 봤다면, 
드라마 속 차무원에 대한 느낌에 오버랩되면서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이 이상하게 왜곡됐을 가능성도 분명 있다.

하여튼, 3,4회가 지나고 5,6회가 지나가면서, 김재중의 '애쓰는 느낌'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아직, 얼굴이 풀샷으로 잡혔을 때 표정이 어색한 부분이 있고, 
특유의 비현실적인 연예인 마스크가 중간 중간 튈 때가 있지만,
그것보다는 드라마 속 공기 안에서 숨을 쉬는 것 같을 때가 훨씬 많아졌다.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김재중은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친구가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역할을 맡았고(재계의 프린스/색기/어둠/집념/두려움),
어떻게 작대기를 그어도 케미가 장난이 아닌 상대역들(최강희, 지성, 왕지혜)과 함께 하게 됐고,
이야기의 줄기와 인물들의 감정라인에 충실하고 복선과 밑밥을 세세히 파악하고 있는 작가와 연출을 만났고,
그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경험과 노력과 재능으로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화학작용 안에서
어쩌면 다른 신인들보다는 쉽게 자기 자리에 발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운도 실력이다, 같은 말은 할 필요도 없다,
그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데도 애 써서 시청자를 짜증나게만 하는 신인들도 많으니까.
김재중의 운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데에는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훨씬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보스>를 통해 김재중을 처음 만난 머글인 나는 6회가 끝났을 즈음에
'이 친구 신기한데?'하는 약간의 호감과 궁금증을 갖게 됐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적극적인 관심은 아니어서 뭔가를 검색하거나 하진 않았을테니.
그건 7회가 끝나고, 또 8회가 지나가면서 김재중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에 달려 있는 일이고
앞으로의 10회를 보게 될 머글인 내게 남겨진 행복이다. 








하지만, 머글은커녕, 김재중의 종신서약 팬인 나는,
일주일에 두번 TV 화면으로 그 친구를 보고, 무수한 플짤을 통해 보고 또 보고. 
살짝 살짝 보이는 팔목이라든가, 키스 신에서의 턱선이라든가, 눈썹이 보이게 '드디어' 깐 이마라든가,
색기,같은 대사라든가, 술취한 연기라든가, 지성과 어깨 싸움을 하며 보여주는 오버액션이라든가, 
한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걷는 자태라든가, 차화연 쌤과 있을 때의 뭉클한 느낌이라든가,
자주 나오는 <지켜줄게>라든가, 나윤을 바라보는 눈빛과 은설을 대하는 웃음이라든가,
부츠를 신은 다리라든가, 허스키한 웃음소리라든가, 
(이러다간 하루 종일 쓸 것 같아서 이쯤에서 쩜쩜쩜.)
그런 것들에 빠져서 하루하루 (아주 오랜만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솔직하지 못해서 복잡한 인연

김영웅재중 군이 한창 드라마를 찍고 있고, 그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한 인터뷰 기사가 홍수를 이루는 가운데, 지난해 이웃님의 요청으로 썼던 <솔직하지 못해서>에서의 연기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재중 군의 생파 책 한 구탱이에 실리는 영광을 안겨준 글인데,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영판 못 썼기도 하고, 현재형으로 읽기에는 맥락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재미있는 것이라면 <솔직하지 못해서>를 보면서 재중 군의 연기가 기대보다 더 좋아서 흥분했던 그때의 내 모습이 보여서 이다.ㅎ 그러면서 또 기대하게 된다. 이번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나는 또 무슨 자랑질을 하고 싶어서 손톱을 갈고 있을까. 




영웅재중. 빛나는 재능의 발견


우리 사회가 아이돌에 대해 가진 편견이 있다. 아니, 많다. 그 편견의 벽은 높고 견고해서 많은 재능 있는 아이돌 스타들이 그 앞에서 좌절하고 만다. 동방신기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돌의 표상 같은 그룹이다. ‘동방신기’라는 이름은 고유명사이기도 하지만 ‘특정 연령대에서 독점적이고 비교 불가능한 위치를 점한 젊은 스타’라는 의미의 보통명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영웅재중은 화려한 외모와 독특한 이미지로 수많은 팬들을 매료시켰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기성세대에게는 ‘아이돌의 전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은 노력과 매력, 가창력과 재능의 폄하로 이어졌다.

동방신기, 또는 토호신기가 한국과 일본에서 점유하고 있는 위상이 다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웅재중이 <솔직하지 못해서>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차이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일본과 한국의 차이라든가, 영웅재중이 처한 상황이라든가, <솔직하지 못해서>에 출연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던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웅재중이 과연 연기자로서의 자세와 재능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성 사회가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선을 버리고, 현재 영웅재중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상황과 장벽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한 사람의 재능 있고, 열정 있는 젊은이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솔직하지 못해서>가 시작될 때 우리가 영웅재중에게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2010년 4월. 그 시점에서 영웅재중의 음악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영웅재중의 연기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것이 물음표로 남아있었다. <베케이션>과 <지구에서 연애중>을 통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오래 전의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애초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기획되고 제작된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이 느슨하고 헐거웠다. 그러니 영웅재중의 연기에 대해 우리에게 제시된 단 하나의 실마리는 <천국의 우편배달부>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텔레시네마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제작된 9편의 연작 중 한편인 <천국의 우편배달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유령 비슷한 것’으로 되살아나는 신재준은 ‘판타지로서의 영웅재중’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붙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연기자 영웅재중’을 만났다고 하면, 그건 분명 과장일 것이다. <천국의 우편배달부>의 신재준은 죽음과 맞닿아있는 인물인 만큼 감정의 폭이 크지 않고, 길고 복잡한 대사나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해야하는 장면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본격적인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특이한 작품 형태 또한 본격적인 연기 데뷔라기보다는 영웅재중의 비주얼이 무대가 아닌 스크린에서도 유효한지, 영웅재중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노래와 춤이 아닌 현실의 대화와 동작을 그려낼 수 있는지, 영웅재중이라는 무대 위의 판타지가 현실의 공기와 햇빛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테스트 드라이브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테스트의 결과는 <솔직하지 못해서>의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연기자로서의 영웅재중의 가능성은 일반 대중과 드라마 산업 관계자들의 눈에도 자명했던 것이다.

그리고 2010년 4월 15일 <솔직하지 못해서>가 방영을 시작했다. 영웅재중이 맡은 박성수라는 인물은 조연이지만, 남녀주인공인 나카지(에이타), 하루(우에노 주리)와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극의 주요 갈등 중 하나를 빚어내는 비중 있는 역할이다.

박성수라는 인물은 ‘스토리의 전개’의 측면에서 보면 다분히 전형적이다. 높은 지위를 가졌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남자가 말하지 못할 비밀을 안고 고향을 떠나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밝은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성공을 거두는 것. 다른 점이 있다면 박성수는 새로운 성공을 거두는 대신 과거의 부유함으로 도피해 버렸다. 그리고 어여쁜 공주, 또는 가난하지만 아름답고 성실한 여자와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대신 거절을 당해 버렸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차이는 박성수가 조연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사실상 당연한 귀결이다. 박성수의 퇴장은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을 위해 갈등요인을 제거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박성수는 어두움과 밝음,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공존하는 인물이다. 박성수의 어두움은 이방인이라는 설정만으로도 필연적이다. 게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까지 가지고 있다면 그 어두움의 깊이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솔직하지 못해서>는 이러한 박성수의 어두움을 다소 피상적으로 훑고 지나가버렸다. 거리를 활보하는 수천, 수만의 현대인은 모두 자신의 어두움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 두려움을 이기고 타인에게 손을 뻗고, 타인이 내민 손을 맞잡음으로써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시작한 작품인 만큼 <솔직하지 못해서>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어두움을 짊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어두움이 극의 갈등을 빚어내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박성수의 경우는 ‘차별당하는 외국인’이라는 어쩌면 가장 구조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어두움이 단지 등장인물에 대한 배경정보에 머물고 말았다. 박성수의 과다한 밝음, 부담스러울 정도의 적극성이 이러한 어두움의 반작용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작가가 의도한 것일까 짚어보지만, 극의 등장인물 제시 방식을 보았을 때 이는 아마도 과잉 해석일 것이다. 결국, 다섯 명이나 되는 주요등장인물과 촘촘하고 유기적이지 못한 스토리라인 속에서 박성수의 어두움은 하루를 향한 사랑이라는 밝은 음악 뒤로 깔리는 단조의 반주에 그치고 말았다.

좋은 작품은 작가가 만든 세계에서, 그 세계에 있을 법한 사건을, 그 세계의 룰에 따라 해결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거기서 연기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작가가 쓴 극본의 대사를 외우고, 감독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다일까? 연기자는 그렇게 창조된 세계 속으로 들어가 대본에 쓰인 인물을 그 세계로 소환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웅재중은 연기는 다분히 성공적이다. 영웅재중은 대본 속에 그려진 피상적인 인물에서 밝음과 어두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모두 존재하는, 입체성과 현실성을 갖춘 박성수를 도출해냈다.

무엇보다 영웅재중이 그려낸 박성수의 얼굴에는 그늘이 있다. 미소가 사라질 때 잠깐 드러나는 서늘한 무표정, 돌아서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피로감, 눈 밑으로, 입가로, 손끝으로 지나가는 복잡하고 어두운 감상. 대사나 지문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박성수의 미묘한 어두움을 영웅재중은 자연스럽게 체화해냈다. 그리고 이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저돌적이고, 가끔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밝음 일변도인 박성수에게 이방인으로서의 두려움과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갖춘 사람에게 있을 법한 어두움을 부여했다. 부산스러워 보일 만큼 적극적이고 쾌활한 현대 젊은이의 모습 뒤에 미래와 스스로에 대해 불안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사람처럼 붕 떠있던 캐릭터가 드디어 제 자리에 내려앉은 것이다. 박성수라는 인물이 대본 속 활자가 아닌, 세상에 실재하는 사람으로서 숨쉬고, 이야기하고, 웃고, 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과연 그것이 영웅재중이 의도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영웅재중이 박성수의 캐릭터를 꼼꼼히 분석하고 그 결과에 의거해 그늘과 그림자를 연기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랜 세월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몸 안에 축적된 수많은 감정들, 본능적으로 자신을 감추고, 표정을 위장하는 방법, 성장기에 겪었던 가족과 사회와 경쟁의 기억들. 그런 것들이 영웅재중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고 <솔직하지 못해서>의 박성수에게 그것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재능이라는 사실이다. 재능이란 5살에 교향곡을 작곡하거나 12살에 카네기 홀에 서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체화하여 자신만의 표정과 색깔과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보통 사람을 연기자로 만드는 재능인 것이다.

<솔직하지 못해서>는 6월 24일, 11회로 막을 내렸다.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영웅재중의 연기에만 국한하면 말을 고르거나 에둘러 표현할 필요가 없다. 앞서 제시한 질문들, 영웅재중의 비주얼과 목소리와 동작이 드라마에서도 유효한지, 영웅재중이 현실의 인물을 연기해낼 수 있는지, 다른 배우들과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 영웅재중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솔직하지 못해서>라는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릴지언정 영웅재중의 본격적인 드라마 데뷔가 성공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서 연기자로서의 분명한 재능이 엿보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을 내놓을 여지가 없는 것이다.

2010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3개월 동안, <솔직하지 못해서> 11회의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젊고 빛나는 재능이 발화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제 그의 앞에는 새로운 길이 놓여있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영웅재중이 그 길에 어떤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가 앞으로도 진지한 연기 커리어를 추구할 것인지, 음악에 전념할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도전을 할 것인지, 그저 짐작하고 기대할 뿐이다. 하지만 영웅재중을 그 길로 이끈 것이 재능이라면, 그가 그 길을 오래 걸어가게 하는 것도 바로 그 재능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영웅재중이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최초 목격한 그의 재능이 크고 빛나게 만개해가는 과정들을 그저 숨죽이고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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